posted by sinji9 2007. 4. 17. 10:11
 

사용자 삽입 이미지오사카에서 진행한 추모영화제 팜플릿


2003년 어느 겨울이었다.[각주:1]
시네21을 다 보고 맨 뒷장의 구인란을 보던 도중 눈에 띄는 자원봉사자 모집란이 있었다.

"고 조은령감독 추모영화제"

그녀에 대해서는 스케이트[각주:2]라는 영화의 젊은 여성감독으로 알고 있었는데. 갑자기 죽은 이유도 알 수 없었다. 그리고 나는 자원봉사를 하기 위하여 연락을 했다.

열심히 일하고, 열심히 보고, 열심히 먹었다.

그리고 하나를 위하여를 보았고, 그 영화에 나오셨던 오사카의 김지석 선생님, 영란이 누나, 그리고 리혜랑 선생님을 만났었다.[각주:3]그리고 거짓말같은 이야기를 하시며 떠나셨다.김지석 선생님이었던걸로 기억한다.

"내년 3월에 오사카에서 추모영화제를 할 예정입니다. 꼭 와주세요"

가고 싶었지만, 갈 수 없다고 생각했었다. 나는 돈도 없었고, 그곳에서 잘 곳도 없었으니까. 거기다가 3월은 개강의 달. 갈 수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2004년 3월 2째주 목요일이었던걸로 기억한다. 나는 친한 형과 영화제에서 만난 현정이누나, 소정이 누나, 고영재형님[각주:4] 오류미씨, 그리고 성함을 묻지못했던 영진위 독립영화분과위원분과 오사카로 향했다.

기찬이 형님[각주:5]과 형수님이 자신이 살고 있던 공간을 조금 우리에게 내주게 된 것이었다.

그곳에서 실제 아이들의 순수함을 보고, 실제로 학교간판이 뜯겨진 모습을 보고, 여러 재일한국인들의 모습을 겉으로나마 보았다. 오사카중학교 아이들의 졸업식을 본것은 나에겐 행운이었고, 잊지못할 경험으로 남아있다.

그리고 6개월후 군대를 갔다.

그때 연락하던 많은 분들과 연락이 거의 다 연락이 끊겼고, 그냥 추억으로 기억하고 있었다.

오늘 어느 게시판에서 '우리학교'를 보셨다는 분의 글을 보았다.
그분은 '하나를 위하여'가 아닌 '우리학교'를 보셨지만, 영화를 본 후 느꼈던 감정은 나와 똑같았다.
그리고 난 부랴부랴 우리영화에 대하여 찾아보게 되었고, 반가운 얼굴들을 만나게 되었다.

그리고 반가운 노래를 만나게 되었다.
오사카에서 cd로 받은 음반인데...항상 이 노래만 들으면 가슴이 찡해지고 많은 추억이 기억이 난다.

이 노래는 나와 하나를 위하여, 그리고 내가 기억하는 많은 분들을 연결해주는 노래이다.

제목은 하나 아리랑으로 알고 있었는데,아리랑 연가라고 합니다.



이 노래를 들어보시고, 와닿으시는게 있으시다면, 우리학교 꼭 한번 보세요.
금액중 1000원은 조선학교의 기부금으로 들어간다고 합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이것이 포스터!!




  1. 11월말 혹은 12월초일 것이다 [본문으로]
  2. 칸 영화제 단편부분 본선에 진출하여 당시 화제를 일으켰었다..그당시 최우수상도 다른 한국인감독의 영화가 탔었다..영화는 단순하다 10여분동안 진행되는데, 한 시골 여자꼬마아이가 스케이트 타는곳에서 본 서울에서 온 남자아이에게 호감을 갖고 몇일에 걸쳐 고민하지만 말을 걸지 못한다. 그러던중 그아이의 스케이트가 굴러떨어진 것을 그 남자아이가 줏어주고 말을 해보지만, 그 남자아이는 벙어리. 무서워서 스케이트도 줍지 못하고 밖에도 못나가던 아이, 결국 몇일후 나가보지만 그녀가 볼 수 있는 것은 오직 스케이트였다. [본문으로]
  3. 그당시 북한의 일본인 납치 인정으로 총련측에 쓰레기들이 몹쓸짓을 많이 하였고, 일본국민, 매스컴의 인식또한 굉장히 좋지 않았을 때이다. 백분토론에도 나오셨던 기억이 난다. 그분들은 합쳐지고 있는 총련과 민단사이를 분열된 대상으로 보이려 애썼던 손석희와 제작진에대해 실망하시는걸 아직도 기억한다. [본문으로]
  4. 우리학교의 제작자 [본문으로]
  5. 하나를 위하여에서 교토대유학생으로 출현하셨다..지금은 아마 한양대 문화인류학과에서 후배들을 상대로 강의하실텐데..못뵙고 나온거 참 후회된다 [본문으로]